나는 서울 중부상권에서 자영업을 했었는데, 종종 번호를 물어보거나 나한테 명함을 주고 가는 단골 손님들이 있었다.
이럴 때 보통 편한 직원들은 옆에서 "우~~ 오~~" 이 ㅈㄹ 떠는 경우들이 많은데, 가게 책임자 입장에서는 잠깐이나마 기분은 좋을 수 있어도 은근 존나게 난감한 경우들이 많다.
왜 난감하냐면 나는 솔직하게 관심히 없는 상태이고, 연락할 마음도 없는데 현명한 대처를 못 했다가는 괜스레 상처를 주거나 손님을 잃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배민사장님광장'이라는 플랫폼에 올라오는 글을 종종 읽고 있는데, 오늘 재밌는 사연이 올라왔길래 나도 옛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배민사장님광장은 배민에서 운영하는 사장님들 플랫폼이다)
여하튼 올라온 사연이 재미있어서 해당 내용부터 올려보겠음.
안녕하세요.
곱창집 운영 중인 초보 사장입니다.
사장님들, 손님이 개인 번호 물어본 경험..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단체 예약도 많이 해주시고,
저희 곱창이 인생 곱창이라 칭찬해주시는
정말 감사한 단골손님이죠.
그런데요.. 이 손님 때문에 요즘 좀 힘듭니다.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하시더라고요..
저희 가게는 새벽까지 일하고
늦은 오후에 일어나 오픈 준비를 하는데요,
아침 일찍부터,
“사장님, 오늘 저녁 예약되나요“,
“친구가 곱창집 낸다는 데 팁 좀..”
“사는 곳은 어디시냐, 결혼은 했냐” 등등
심지어 쉬는 날에도 계속 연락 와서,
요즘 24시간 일하는 기분이에요 ㅠㅠ
개인 번호 연락은 자제해달라고 말씀드릴까 했는데,
단골손님을 잃을까 걱정도 되고..
기분 나빠하시지는 않을까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그렇지만 계속 연락을 받자니 제가 너무 힘들고..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사장님들의 조언이 필요합니다.
아마 내 상황과는 조금 다르긴 한데, 해당 내용을 올린 곱창집 사장님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공감이 매우 가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게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거든.. ㅋㅋㅋ
베스트로 달린 댓글-
"개인번호로 전화 오면 처음에는 응대를 해드립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가게로 전화번호 알려주고 가게로 전화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차단 박습니다. 매출도 매출이지만 스트레스가 없어야 정신건강에 좋은 장사를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에 10000% 동감한다. 위 곱창집 사장님의 경우 손님이 정말 관심이 있어서 연락을 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연락을 한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전제조건을 떠나서 상대가 '단골손님'이라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매출 떨어지는 거야 뭐 열심히 하다 보면 다른 손님들로 채워지고 하면서 늘어나는 것이지만, 이게 은근 인간적인 문제거든.
특히나 은근 감성적이거나 내향적인 성향을 가진 사장들 입장에서는 칼 같이 끊는 것을 못하기 때문에 은근히 이런 문제로 스트레스받는 경우도 많다.
나 같은 경우도 언제 한번 단골 손님이었던 여성분이 마감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근처 타르트집에서 타르트를 직원들과 먹으라고 잔뜩 사다 주신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냥 되게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며칠 뒤에 친구랑 와서 거의 마감할 때까지 맥주를 마신 뒤에 계산을 하고 나갔었다. 그런데 친구랑 가게 문 앞에서 "꺆~ 꺄앆~" 거리면서 서로 끌고 땡기고 하더니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손안에 명함 하나를 집어주더니 추노 하듯이 가게 밖으로 뛰어나갔다. 나는 "뭐지 ㅅㅂ?" 하고 명함을 확인해 보았는데, 본인 회사 명함 뒷면에 '괜찮으시면 , 연락 주세요'라고 예쁜 글씨로 적혀 있었다.
참으로다가 귀여웠다. 초중딩 때 이후로 이렇게 소녀 같은 여성은 못 겪어봤던 것 같은데, 마치 세상의 아름답고 긍정적인 부분만 찾아내려는 꽃순이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내 기준에서 너무 어려보였으며, 불경기에 자영업 해보면 알겠지만 내가 보는 한쿡 사회는 그리 알흠답지 못했기에 연애 생각도 없었다. 즉 마음에 여유도 없었을뿐더러 호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후로 내가 한 이틀 정도 이 문제로 상당히 신경이 쓰였는데,, 무언가 답변은 해주어야 될 것 같기도 하면서, 정신도 없는데 어떻게 답변을 해야 되나 하고 머리가 아팠기 때문이다.
우선 나의 경우는 손님한테 연락을 아예 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는 기분 상하지 않게 내 사정을 잘 설명해 드려야겠다 생각은 하고는 있었는데, 일 하다 보니 까먹어서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두 번 다시 나의 가게에 나타나지 않았다. (im so sorry) 꽃순이가 상처받지 않았었기를 바란다. 불경기에 자영업자들은 말이야,, 휴머니즘을 느낄 수가 없거든.
무튼 글 제목에다가는 '대처 방법'이라고 써놓긴 했는데, 글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일기를 쓰게 되었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대처 방법 따위는 없다. 너가 우선순위를 명확하게 잡으면 된다.
'진정으로'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소인배처럼 손님 한 명 떨어져 나가는 것 두려워하지 말고 개인적인 연락은 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하라.
괜히 애매모호하게 엮여서 일하는데 집중력만 흐뜨린다. 아니면 나 같이 그냥 신경 좀 쓰다가 까먹고 잊어버리던지. 근데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진심으로 호감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발정난 개새키 마냥 손님들 상대로 요상한 청사진 그리지 말고 일에 집중해야 한다. 이러려고 사업자 낸 거 아니잖아?
사업 운대 꺾이는 거 크고 작은 일 때문에 일어나는 것 아니다. 아주 '사소한 것' 때문에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는 것이다.
잠 안 와서 이래저래 혼자 떠들어 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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